오데마피게-로얄오크(Royal-Oak)-이야기-[2편]
로얄오크, 비판의 대상이 되다(?) ​ ​ 그렇다면 우리의 예상대로 로얄오크는  즉각적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로얄오크는 출시 초기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디자인, 눈에 보이는 개스킷과 나사, 일체형 브레이슬릿, 엄청난 가격표등 많은 비평가들은 오데마피게가 몇 달 안에 파산할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로얄오크의 매력과 품질은 오랫동안 부정 될 수 없었습니다. 시계 컬렉터와 트렌드 세터들은 확실히 다른 디자인으로 안목 있고 정보에 밝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시계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오데마 피게는 결국 엄청난난 성공을 거두며 르 브라수스 의 자긍심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 이후 오데마피게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레퍼런스 5402의 A 시리즈로 알려진 첫 번째 1000피스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첫 번째 로얄 오크 1,000개를 모두 판매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지만, 마침내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A 시리즈 이후에도 다른 1000피스에는 여전히 A 시리얼 넘버를 사용하다가 B 와 C 시리얼 넘버로 변경했습니다.이 첫 번째 로얄오크 A 시리즈는 여전히 수집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계로, 이후의 시리즈처럼 12시 방향이
오데마피게-로얄오크(Royal-Oak)-이야기-[1편]
이글은 OK신사전당포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된 글을 옮겨왔습니다.   ​ ​ ​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과 변치 않는 매력​로얄오크 시계는 40년 넘게 안목 있는 사람들의 손목을 빛내온 오데마피게의 그야말로 전설적인 시계입니다. 유명한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이 상징적인 시계는 우아함, 정교함 그리고 럭셔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혁신적인 디자인, 뛰어난 장인 정신과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로얄오크는 전 세계 시계 애호가들의 감탄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며 최고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 ​ ​ 로얄오크(Royal Oak) 의 탄생 ​ 1972년 4월, 바젤: 연례 스위스 시계 박람회(이후 바젤월드로 명칭 변경)에서 오데마피게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특징인 통합형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럭셔리 스틸 시계를 선보였습니다. 처음에 시장을 당황하게 했던 이 시계, 로얄오크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가장 상징적인 시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72년 오리지널 로얄 오크 ref. 5402 사진출처: christies.com ​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70년대 초, 오데마 피게는 다른 많은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
오피치네-파네라이-(Officine-Panerai)-이야기
이글은 OK신사전당포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된 글을 옮겨왔습니다.    시계를 좋아하신다면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1세기 반 이상 된 스위스 메이드 시계 브랜드인 파네라이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 파네라이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컬트적인 팬덤인 파네리스티(Paneristi)라고 불리는 그룹을 보유한 수집가들이 탐내는 브랜드로서 스타덤에 오른 것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 ​ 오피치네 파네라이, 그 여정의 첫걸음 ​ 파네라이의 매혹적인 역사는 1860년 오피치네 파네라이 시계의 여정이 시작된 유서 깊은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에 확고하게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혁신과 탄력성, 탁월함을 향한 헌신의 이야기인 파네라이의 기원은 정밀 기기 제작이 단순한 직업이 아닌 고귀한 소명으로 여겨지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오반니 파네라이는 1860년 피렌체의 그라찌에 다리(Ponte alle Grazie)에 공방이자 매장 겸 피렌체 최초의 워치메이킹 학교인 시계 매장을 설립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오피치네 파네라이의 역사가 시작됩니다.창립 당시 오피치네 파네라이 시계 컬렉션은 이탈리아 해군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밀 기기를 제작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롤렉스의-영원한-아이콘---데이트저스트
이글은 OK신사전당포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된 글을 옮겨왔습니다.   롤렉스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제품군이 있으신가요? GMT-마스터? 서브마리너? ​ ​ ​ ​ 물론 위의 두제품군이 요즘 가장 인기있지만, 롤렉스 시계 역사속에 빠질 수 없는 롤렉스의 상징적 아이콘, 데이트저스트가 있습니다.젊은 세대들중 일부에겐 일명 꼰대아저씨가 많이 찬다는 이미지 때문데 호불호가 있는 제품군이지만 꼰대들의 시계로 치부하기엔 전세계 시계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역사, 혁신적인 기능, 아이코닉한 디자인 요소 등 롤렉스 시계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시계의 걸작임을 부인할 수 없죠.(국내에서는 데이트저스트의 발음이 좀 길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보통 ‘데이저스트’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틀린 명칭입니다.) 시계의 틀을 깨다 ​ 롤렉스 데이트저스트의 시작은 새로운 낙관주의와 세련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 최초의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Ref. 4467. 사진출처: rolex.com ​ 1945년 롤렉스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출시된 데이트저스트는 1945년 레퍼런스 4467로 데뷔했습니다. 손목시계 최초로 자체적으로 날짜를 변경하는